[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해양강국 고려의 밑거름 된 뛰어난 조선기술…'거북선의 원조' 과선으로 여진 해적 물리져

입력 2021-12-06 10:00   수정 2021-12-10 13:51


해양의 나라 고려는 500년 역사에서 해군력과 조선술이 발달할 수 있는 다섯 번의 계기를 맞이했고, 잘 활용해 역사의 성공을 이뤘다. 건국자인 왕건은 ‘해군대장’·‘백선장군’의 칭호를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제독이었다. 전형적인 해양세력이었다. 그가 초기에 사용하던 큰 배 10여 척은 각각 사방 16보요, 위에 다락을 세우고, 말을 달릴 수 있을 정도였다는 기록이 있다. 사방이 16보라면 20m 정도로 대형 돛대를 몇 개 설치한 큰 함선이다.
여진 해적들의 바다로 변한 동해
11세기에 들어오면서 동해는 여진 해적들의 발호로 혼란스러웠다. 고려는 국가정책으로 해적 대응책을 강구했다. 동해안의 원흥진(함경남도 정평)과 진명진(원산)에 ‘선병도부서(해군함대 기지에 해당함)’를 설치했고, 예하부대로서 진(鎭)과 수(戍)에 수군을 뒀다. 그리고 해군력의 핵심인 함선 건조에 돌입했다. 1008년에 처음으로 과선(戈船)이라는 신형군함을 75척 건조했는데, 선체의 곳곳에 창을 꽂아 근접전을 펼 때 적병들이 갑판 위로 뛰어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접근이 어렵게 만들었다. 선수에는 쇠로 뿔(충각)을 부착해 적선과 충돌시켜 선체를 깨뜨려 침몰시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 70여 명 정도가 승선하며, 적재용량은 1000석 정도라고 한다.

고려는 1050년에 전함 23척을 이끌고 초자도의 여진 해적을 공격했다. 1107년에는 육군과 협동으로 해륙양면작전을 벌이면서 북쪽에 있는 여진 해적의 본거지를 공격했다. 동해에서 활용한 이 전투선들은 높고 거친 파도, 편북풍 계열의 바람, 원양항해구역 등 동해의 해양환경과 여진족의 배·무기·전투방식을 고려해 만든 전선이었다. 필시 파도와 폭풍을 견딜 수 있도록 선체가 단단하고, 능파성이 강하도록 크기는 작은 대신 폭이 좁고, 길쭉한 형태에 돛대가 적은 형태였을 것이다. 고려 말에 검선(劍船)이란 이름을 가진 배가 등장하는데, ‘칼(劒)’을 꽂아놓은 것 같은 의미로 보아 기능과 형태는 과선과 유사한 전선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런 배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구선(龜船)으로 발전했다. 이어 이순신에 의해 성능이 개량되면서 거북선이 됐다.
세계 최고 송나라 조선술을 수용·개량
고려인들은 머리가 좋고, 해군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자체의 조선술이 뛰어났던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필요성과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송나라의 조선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송나라가 건조한 배들은 그 무렵에는 세계에서 최고의 수준이었다. 고려와 송나라는 서해와 동중국해를 공유한 채 공적인 외교교섭뿐만 아니라 공무역, 민간무역이 활발했다. 그런데 해양문화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모방성과 공유성이다. 같은 해역을 공유하고 때로는 운명 공동체인 만큼 기술자 집단이나 운행자 집단들 간에는 기술력과 지식(항법), 경험(해상상태 등)을 공유하거나 빠른 시간에 모방한다.


한 예를 들면 서긍이 속했던 송나라의 사신단은 주력선인 2척의 신주와 보좌선인 6척의 객주로 구성됐다. 그런데 객주는 길이가 30m, 높이가 9m 폭이 7.5m이고, 주 돛은 높이가 30m에 달한다. 곡식 2000섬(1섬은 10말)을 실을 수 있었고, 신주는 그 3배에 달하는 거함이었다. 그런데 인도양을 지나 페르시아만을 왕복하는 송나라 배들은 선원이 400~500명에 달하고, 큰 배는 1000명 이상이 승선했다. 나침반을 갖춘 이 배들은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올 때를 빼놓고는 어느 방향으로든 갈 수 있었다.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신안 해저유물선은 원나라의 것이지만 송 선박을 그대로 계승했다. 배 밑바닥이 V자형인 첨저선(尖低船)으로, 길이 30여m, 깊이 9m, 너비 5.5m이다. 돛대는 앞뒤로 2개인데, 앞돛은 24m, 뒷돛은 30m이다. 주 돛의 위에는 야호범(野狐帆)이라는 보조 돛을 달았는데, 이는 풍향을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뒷바람뿐만 아니라 옆바람까지도 이용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조선술과 항해술 등 해양력을 강화한 고려는 유라시아 세계질서의 중심이 된 몽골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됐다.
√ 기억해주세요
고려는 1050년에 전함 23척을 이끌고 초자도의 여진 해적을 공격했다. 1107년에는 육군과 협동으로 해륙양면작전을 벌이면서 북쪽에 있는 여진 해적의 본거지를 공격했다. 동해에서 활용한 이 전투선들은 높고 거친 파도, 편북풍 계열의 바람, 원양항해구역 등 동해의 해양환경과 여진족의 배·무기·전투방식을 고려해 만든 전선이었다. 고려 말에 검선(劍船)이란 이름을 가진 배가 등장하는데, ‘칼(劒)’을 꽂아놓은 것 같은 의미로 보아 기능과 형태는 과선과 유사한 전선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런 배들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구선(龜船)으로 발전했다. 이어 이순신에 의해 성능이 개량되면서 거북선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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